30만하고도 2634일째의 아침이다.
나이는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처음의 백년은 대략적으로나마 헤아릴 시도는 해봤지만 이미 몇 백번의 해가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긴 시간이 흘러 이제는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손수 만들어낸 -수천 수만번 덧대어 사용한- 달력 덕에 그날 이후로 며칠이 지났는지 정도만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옛 기억들은 모두 흐려졌다
아니 흐려졌다기 보단 이제는 조금의 추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한한 시간들이 소중했던 기억들을 갉아먹어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가족, 친구, 연인이 어떤 얼굴을 했고 어떤 목소리를 내고 그리고 어떻게 사랑했는지까지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의 기억만큼은 아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악마의 유혹에 똑똑한 척 유세떨었던 저주스런 나날의 첫 날만큼은 말이다.
물론 그 거래 이후 몇 십년 정도는 축복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도 다치지도 늙지도 않았으니 무적의 신체라고 생각했었다.
몇 십년까지는 말이다.
내게 소중했었던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잊혀져가 지쳐갈때쯤 그제서야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 이후로는 죽고 싶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천장에 목을 매어 보기도 하고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러보기도 했었다.
어떤 시도든 간에 사람들에게 발견될때까지 살아있는 채로 고통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몇백년간 자살시도를 하고 슬슬 죽는 것을 포기하려 할때쯤에 정신차려보니 인류가 멸망했다.
어처구니 없었다.
핵전쟁이니 뭐니 해서 모두가 죽고나서 죽지도 못한채 매일을 홀로 몇 백년 쯤 지내다보니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도 했었다.
배고픔도 무시하고 홀로 몇 십년을 우두커니 앉아 동물에게 산채로 먹히기도 했었고 벌레가 몸안에 둥지를 틀기도 했었었다
그저 한낱 돌처럼. 나무처럼 말이다.
다시 악마와 계약을 할 수 있다면 이 무한한 시간을 끝낼 수 있을텐데.
다시금 시간을 되돌리기를 매일 순간 기도할 뿐이었다.

필력쩐다..ㄷㄷ

와 잼나네요 더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