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라임맛라임No.6332014.03.25 23:56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라는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을 받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이 회복된 이후, 자신의 병을 고친게 신이라고 믿어서였는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기독교복음침례회[1], 소위 구원파라 불리는 교파의 교회로 옮겨 다니다가 다시 거기서 이탈했고 이탈하면서 아예 추종자들을 모아 나와서 시한부 종말론을 숭상하는 사이비 종교를 직접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대양이었다.
오대양이라는 이름은 박순자가 "나는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으로 앞으로 전세계를 주관하게 될 것이다"라고 공언한데서 나왔다고 하는데, 어쨌든 박순자는 1984년 공예품 제조회사를 만들면서 회사 이름도 오대양으로 짓는다. 처음 오대양은 대전에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대전과 용인등의 공장을 사들이면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사업을 하는 한편으로 신도들과 신도들의 자녀들을 모아 집단생활을 시켰으며 유치원과 양로원, 고아원 건물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사회사업을 하는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겉으로는 시설을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며 고아들을 잘 키우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 속내는 신도들의 자녀를 세뇌시켜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고 너희들은 고아이며 오로지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유도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소리도 공공연히 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박순자는 1986년 4월, 일본의 전자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해 당시로선 거액이라고 할 수 있는 7억을 투자해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했으나...사기를 당한 것으로 드러나 사업은 실패했다. 이때부터 오대양은 점점 광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라고 명하고 신도들을 비인간적으로 통제했다. 부부들에게는 각방을 쓰고 금욕생활을 강요했으며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금지했다. 오로지 2주에 한번씩 그것도 많은 사람들끼리 단체로 외출을 하는 것만 허용했으며 외출 이후에는 반드시 외출시에 같이 나간 상대방이 밖에서 했던 모든 행적을 일일히 보고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매달 한번씩 반성의 시간이란 것을 가졌는데 이때 신도들은 한달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아비판실토해야했고, 만약 규율을 어긴 것이 드러나면 벌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가차없이 집단구타가 행해졌다. 심지어는 딸이 어머니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벌을 내린다면서 어머니를 두들겨 패고, 어머니는 이를 감사해하는 황당한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박순자가 신도들을 굴려서 끌어모은 사채는 무려 170억여원에 달했다고 하며,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갖다 바쳤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박순자에게 7억을 빌려준 이상배라는 사람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기위해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구타당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상배는 경찰에 오대양을 고소했다. 다른 채권자들도 경찰에 고소하면서 경찰은 사기혐의로 박순자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사회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더이상 엄청난 사채이자가 감당못할 지경에 이르고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계속되자 박순자는 특별히 사채를 가장 많이 끌어모은 열성 신도 및 자신의 가족 31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공장의 식당 천장에 4일간 숨게 되었다.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 김모씨는 경기도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숙소의 천정이 내려앉아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식당쪽으로 갔는데 식당 천정에서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마침 가족을 찾으러 공장에 온 박순자의 남편에게 알렸다. 박순자의 남편은 경찰에 오후 4시경 신고해 집단변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건현장에서는 사망한 사람들이 쓴것으로 보이는 메모들이 발견되었는데 "사장이 독약과 물을 가지러 갔다"라거나 "xx도 지금 매우 고통을 받고 있다", "xx가 꿈을 꿨는데 그곳이 지옥이라고 하더라", "남자는 다 잡혀가고 여자들은 다 헤어지고..." 등등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메모의 내용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독약을 먹고 죽은게 아닌가 했지만 경찰의 부검결과 독극물은 나오지 않고 대신 하이드라민이라는 신경안정제 성분이 발견되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목졸려 죽은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경찰은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목이 졸려 죽은것으로 보았다.
경찰에 의하면 가장 먼저 박순자가 공장장인 이경수에게 자신을 목졸라 죽이게 한뒤 이어 이경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목졸라 죽이고 나서 여자들이 모두 죽은 것이 확인되자,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한뒤 마지막으로 이경수가 목을 메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사망자들의 사망정황은 드러났다지만 왜 이들이 집단적으로 자살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드러난바가 없이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경찰은 사건의 열쇠를 쥔것으로 보이는 오대양 직원 11명을 공개수배했지만 이들은 당시에는 잡히지 않았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건 1991년 7월, 사건당시 수배되었던 오대양 직원들중 6명이 자수하면서 의문점들이 일부 밝혀지게 되었다. 자수한 이들의 진술로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쥔것으로 주목받았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이 이미 사건발생전에 반성의 시간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오대양 직원들에게 살해된뒤 암매장당한 것이 밝혀졌다.
이들의 자수로 다시 사건이 대전지검에서 재조사되었지만, 검찰 역시 1987년 경찰의 수사와 마찬가지로 32명은 집단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들의 자의에 의한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있다..
이...이게뭐야?!2014.03.29 02:23
호롤롤롤2014.03.29 10:07
이...이게뭐야?!14.03.29 02:23
호롤롤롤14.03.29 10:07
밤꽃향기14.05.20 11:45
개드립No.36073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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