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내인생 고찰3

406546No.320082021.02.04 15:10

내 인생에 대해 억울하다던가 속상해서 쓴글이 아닌데
쓰다보니 분했던 일만 쓰게 되는게 익명글이라서 인가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14살때 아빠가 편찮은걸 알았고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지 않았다. 단순히 당뇨일거라 생각했고 매일 아빠는 혈당을 재고 막내딸이 눈에 아른 거려 악착같이 운동을 했다. 등산을 할때가 있었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아빠는 유독 나를 좋아했다 자신을 닮은 언니보다 엄마를 닮아 뽀얀피부에 볼이 토실토실한 나를 보며 라이터 돌이라는 애칭을 지었다. 언니랑 싸우면 내편을 들었고 엄마에게 혼나면 몰래 달래주었다.

그렇기에 더 살고 싶었을 것이고 내 결혼식에 손잡고 입장 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학가는 것도 보고 남자친구를 데려오면 괜히 핀잔도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쳐있는 간에 액기스나 일반남성도 소화하기 힘든 몸에 좋다는 것들은 다 먹어치웠다. 흑마늘,현미, 멧돼지쓸개, 마지막에는 영악한 친척이 파는 영양제 파우더도 먹었다. 그것이 희망인듯 우리가족은 목매었고 나는 다니지 않던 성당에 갔다. 엄마나 아빠가 좋아해서 갔다.
그래서 내 기도가 절박하지 않았는지 필요할때만 찾아 서인지 내 기도는 들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아빠랑 같은 병실을 쓰던 아저씨가 전화가 왔었다. 자신이 퇴원을 했고 잘 계시냐는 물음이었다.
그날 나는 혼자 집에 있었고 울먹이며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아버지 돌아가셨어요.” 아저씨는 미안해 하셨고 아저씨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후로도 엄마에게 아빠는 무엇때문에 아프셨는지 물어보지 못했고 가끔 장롱 속 깊이 들어있는 사망서류와 진단서들만 발견 할 수 있었다. 충분히 물을 수 있었지만 언니든 엄마든 다시한번 상처를 주기 싫었다.

학교에서도 나는 밝았지만 아빠를 잃고 그 후는 완전히 성격이 바뀌고 아버지 또랠 보면 그냥 눈물이 난다.
한날은 아빠가 꿈에 나오기도 했는데 그럴때마다 아무말 없이 나를 보신다. 꿈인걸 알지만 깨지 않으려 애쓰는데 늘 아무런 대화를 못하고 깨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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