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글

435746No.348752021.06.29 10:29

버스 안에서 두서없이 썼던 거라 글이 엉망일 수 있음.
적어서 털어버리려고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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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길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목격한 일.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는데 내 바로 앞으로 숏팬츠를 입은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단지에서 나와서 정류장으로 향했다.
칠순을 목전에 뒀을 법한 경비 아저씨가 길을 쓸다 말고 멍하니 그 여자의 뒤를 좇아 한참을 쳐다보는걸 멀리서 조망하듯 바라봤다.
우리 셋은 경비 아저씨를 기준으로 극단적인 둔각삼각형 구도였다. 내 시선 안에 두 사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연로한 할아버지가 한참 나이어린 여자를 특정 부위 중점으로 오랫동안 바라본다는게 징그럽게 느껴졌다.

쳐다보는것도 죄냐고 마냥 화내기엔, 자기 손녀를 자기또래가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면 할아버지도 기분나쁘지 않을까?

나는 제3자. 노인의 시선을 내 육성으로 여자에게 옮긴다면 어찌됐든 나의 개입으로 인해 그 여자는 느끼지 않아도 됐을 성적불쾌감(요즘은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가 바뀌었다고 한다)을 느끼게 되는 셈이다.
모르는게 약이란 말이 이럴 때도 통하는 건가 싶다.

쳐다보지 말라고 종용하고 강제하는 것도 자유에의 강압일지도 모른다.

성범죄 판단과 결과에 따른 처벌, 재발 방지 등의 후처리 방법 등생각이 많아진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욕구에 미묘한 법적 바운더리를 규정,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살아가는게 어렵고 묘하게 느껴진다.

나는 왜 굳이 아침 출근길에 이런 생각에 빠졌는가...
어쩌면 지나온 과거들 중에 좀 달라붙는 옷을 입었던 어떤 날 나도 모르게 받았을 시선들을 생각하며 나를 아침에 만난 그 여자에 대입했을 지도 모른다.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씻는 상상을 하며, 아아 한 잔 마시며 복세편살을 조용히 중얼거려본다.

내게도 미묘한 뉘앙스에 이게 내가 화를 내도 되는 걸까? 우물쭈물하며 당시에 단체의 분위기상 제대로 대응못했지만 그 뒤로 오랜 시간동안 조용히 혼자 있을 때 몇 번이고 생각이 나서 울적해졌던 순간들이 많다.

그 외에

살아오면서 내가 제3자의 입장인데도 마치 내 수치, 내 슬픔인 양 느껴졌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서빙하느라 바쁜 식당 종업원 여자의 둔부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던 옆테이블 중년 남성의 조금 길었던 시선.

저 여자 *통 봤냐며 몇 번이나 가던 길 고개를 돌려 쳐다봐가며 키득거리며 지나가던 몇몇 남자들의 수다에 괜스레 지나가던 내가 얼굴 붉혔던 기억들.

내 몫이 아니기에 그냥 지나쳐야 했던 불쾌감의 순간순간들.

나는 페* 집단의 불도저같은 과격함을 싫어하고
성평등을 지향하고
성범죄는 보다 강력하게 처벌하길 희망한다.
가끔 몇몇 남자들의 몰지각한 언사와 행동에 급발진한다.
본능이라며 일정 부분 면죄부를 주장하지만 우리는 분명 문명인이다.

지금 시점에서 할아버지의 시선엔 죄가 없다.
그 여자는 그저 오늘 하루도 즐거이 보람차게 보냈으면 좋겠다.
나의 이 울적한 소회는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아있고, 사는게 바빠서 업무 속에 뒤섞여 좀 더 빨리 뇌리에서 잊혀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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