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장몸부림[수정] 10-13 00:26 10-13 00:03
초딩때부터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삶은 달걀과 과자에 현혹되어 잠시 다녔던 교회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있댔다.
어머니가 믿는둥 했던 불교에서는 윤회를 한다더라.
근데 난 그것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사후세계를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그런건 없고 썩어 없어진다더라.
난 그 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걸 온전히 믿을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죽음의 공포는 중학교로 이어졌고 고등학교 그리고 20대 까지 나를 괴롭힌듯 하다.
생각하는 내가 사라지는게 두려웠다.
대학교땐 한달에 한번꼴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왠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때문은 아니었다.
잠이 안오는 날이면 난 가만히 어두운 방에 누워 그 순간을 즐겼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을 더듬으며 전 생애를 돌아보고..반성도하고 감사도하며..
앞으로의 삶도 그려보았다.
그러다보면 아침이 밝았고 난 아무일도 없던듯 하루를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기억..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도로 옆 허름한 옷차림의 할아버지가
일어날 힘도 없이 옆으로 누워있었다.
바지는 내려진채 앙상한 하반신이 들어나있었고 그 옆에는 대변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미동 없이 숨만 껄덕였고 주변 친구들은 똥을 누었다고 놀리기 바빴다.
그 앞 상가 사람중 누군가가 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119 사람들이 우리를 멀리 보냈다. 그 할아버지는 운명을 달리하셨던 것 같다.
동네에 하나 생긴 아파트 고층에서 탈영병과 소방관이 대치했었다. 친구는 500원을 손위로 뻗으며 목청 높혀 소리쳤다. 뛰어내려봐 이거 줄께!
죽음과 줄다리기하던 그는 어떤 생각에 자신을 창가에 앉혔을까?
초딩.. 그 시절 우리는 겁이 없었다. 어쩌면.. 매일같이 동네에 울리는 싸우는 소리.. 어른들의 고함속에서 도피처나 현실을 잊게할 자극들을 찾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버스로 타지도 가고 1시간 거리의 절도 다녀오고.. 어디든 모험을 떠나듯 낯선 곳들로 향했다.
친구들은 편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판자촌같은 곳에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우리가 뭘하는지 어딜 가는지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다들 거친탓인지 낯선 동네에 가서 만난 아이들에게 시비도 걸고 싸움도 곧 잘 했다.
하루는 동네 친구들 여럿이 버스에 올라 계곡으로 향했다.
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한 여름 그날..
난 친구를 잃었다.
그 친구와 가장 친했던 내가 구급차에 함께 올랐다.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던 창백해진 그 친구의 얼굴..
손이 침상 옆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촛점 잃은 친구의 눈빛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 친구집은 과거 그 친구 위로 둘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하나 남은 그 친구마저 떠났다.
몇날 몇일을 계속 울었다.
계곡에 가자고 그 친구를 불렀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몸서리치게 미안했다.
한동안 난 죄책감에 시달려야했다.
몇년 뒤 초6.
잠이 들었는데 몸이 붕 뜨더니 자고있는 내가 보였다.
밖에는 빗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가 나타났다. 같이 가자고 했다.
두려웠고 어떻게해야할지 몰랐다.
빛이나왔고 그 빛이 나를 구해주며 잠에서 깼다.
내가 자던 포즈, 창문밖에서 내리던 비와 어두운 정도 그리고 천둥빛까지.
모든게 꿈과 일치해서 더 무서웠던 것 같다.
당시 베프였던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난 아직 계속 그 친구 생각이 난다고.
친구는 니가 마음이 여려서 그런꿈을 꾸는 거라고 했다.
대학교때 미국 고속도로에서 산산조각난 차량과 오토바이 그리고 흔건하게 바닥을 적신 피와 살점.. 파편들을 봤다.
난 종교도 없고 딱히 사후세계를 믿는 편도 아니었지만.. 사고를 보거나 구급차 사일렌이 꺼질때마다 기도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천국으로 가서 평안을 찾으시고 부디 원하는 좋은곳으로 가시길.. 남은 가족들도 슬픔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길 기도했다.
한국에서 사귀게된 여자친구.
그 여친의 베프와 내 베프가 계곡으로 1박 여행을 갔다.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데 까마귀가 계속 울어댔다.
난 그 소리조차 인지하지 못했는데 여친의 친구는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재수없다며 계속 심한 욕을했다.
너무 거칠게 말을 해서 새삼 놀랐다.
그 친구는 평소와 다르게 고기를 엄청 먹었다.
나도 식성이 좋지만 그날은 나보다 더 먹은 것 같아 신기했다.
그날 밤. 여친의 베프는 담배가 떨어졌다.
마침 매점도 문을 닫혔다.
여친의 베프는 내 친구와 함께 차를 탔다. 담배를 사러 시내로 향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복사고가 났다..
그날 여친의 베프는 운명을 달리했다.
시신 확인을 했는데 너무 비참했고 참담했다.
여친말이 계곡에 놀러 오기 얼마전에 여친의 베프는 점을 보러 갔었다고 했다. 거기서 무당이 검은 옷입은 남자가 보인다고 했다나 사자가 보인다고 했다나..
그래서 까마귀 소리에 그렇게 민감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아이의 어머니의 우시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때 이혼을하고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언성을 높혔다. 그녀의 어머니는 합의금 다 필요없다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다 가져가라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허름한 집에 형편이 좋지 못했지만.. 납골당에 갈때마다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을 바리 바리 싸가시곤 했다. 그 여자아이는 심성은 착한 아이였다.
그날 거친언행들과는 어울리지 않던 사람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는 어떤때보다 영혼이나 사후세계가 믿기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공포가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것 같다.
여느때 처럼 잠이 오지않던 날이었다.
사후세계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초등학교때 도사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셨다.
그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부적도 써주고 그러셨지만.. 절대 돈은 받지 않았다. 주변 누구에게 물어도 그 누구에게도 단 한번도 돈을 받아본적이 없다.
그냥 장날에 와서 사람들을 봐주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시며 농사짓고 사셨다.
어떤 아주머니가 꿈이야기를 하니 바로 무덤에 같이 가자시고는 여기 시체 한구가 더 있다고 파내라고했다.
아주머니가 묘는 파는거 아니라고 거부하셨다.
할아버지는 여기서 시신 한구 더 안나오면 날 여기 묻으이소! 하면서 완강하게 말하셔서 포크레인 기사 불러 파보니 진짜 시신 한구가 더 나왔었다.
사람들이 할아버지 앞에 줄을 섰었지만 단 한번도 돈을 받지 않았다. 계속 사례를 하려해도 받지 않고 담배만 가끔 받았다.
나를 많이 예뻐하셔서 하모나카도 사주시고 글귀도 써서 액자에 넣어 주시고.. 없는 살림에 아이스크림도 너무 많이 사주셨다.
유년기에 아이스크힘 한입만 먹어보는게 소원이었고 아이스크림에 한(?)이 있었는데 ㅋㅋㅋ 할아버지가 아셨던건 아니겠지? ㅎㅎ
어머니가 사례를 하려해도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아버지에게 왜 돈을 안받으시는지 물었다.
할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시며 자기는 이번 생에 남도울 운명을 지고 온 사람이라서 돈은 받으면 안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말할때마다 잘 맞추셨다.
유명해서 그런지 장모님도 아시더라.
사람들한테 비교적 최근에 물어보니 내가 모르던 이것 저것 신기하게 잘도 맞추셨다.
초등학교 그날..
할아버지가 내게 올해는 절대 계곡에 가지마라고 신신당부 하셨는데 그 해 나와 내 베프가 동시에 물에 빠졌었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물이 탁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감도 못잡겠고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 물살에 몸이 빙글 빙글 도는것 같았다. 내가 돈건지 물이 돈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앞에 어떤 백발 수염 할아버지와 그 뒤에 할아버지? 두명이 서있는 형상이 나타났다.
내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본 환영인지 뭔진 모르겠다.
그 분이 손으로 한곳을 가르켰다.
그쪽으로 손짓발짓 다 하면서 나아가다보니 발끝에 모래들이 날려드는게 느껴지고 숨넘어가기 전에 밖으로 걸어서 나올 수 있었다.
꽤 먼 거리를 수영도 못하는데..
손짓 발짓으로 살아나왔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그날 친구는 물속에서 너무 늦게 나왔다.
내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미국에서 학교다닐때..
먼거리에 여친이 마지막으로 보고싶다고 했다.
새벽에 3시간을 운전해서 가야했다.
속도를 올렸다.
잠이 쏟아져서 눈이 감겼다.
갑자기 안개가 자욱해졌다.
멀이 앞에 안개사이로 검은 비닐봉투가 떠다녔다.
미국은 저런 작은크기에 검은봉투가 없는데?
눈을 비비며 자세히 봤다.
교통사고난 사람 얼굴이 공중에 떠있었다.
놀라서 브레이크를 조금씩 밟았다.
떠있던 얼굴이 내 차로 돌진해왔다.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유리를 뚫고 내 몸을 관통하는데 닿는 순간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브레이크를 완전 쌔게 밟은 상태로 굳어있었다. 빨리 달리던 차가 완전히 멈췄다.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털들이 다 곤두서는 듯했다.
바로 앞이 가드리인 없는 절벽이었고 그때 멈추지 않았다면 난 떨어져서 운명을 달리했을꺼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신기했다.
극한 상황에서 무의식의 작용인가 싶기도 하다.
설마 뒤에 귀신이 탔을까 가는 내내 백밀러를 힐끗 힐끗 봤다. ㅋㅋ
예지몽을 꿨던 기억들도 있고..
하루는 제사를 앞두고 할아버지(생전에는 못봄)가 꿈에나타나서 배가 너무 부르다고 하셨다.
그 말을하니 아버지도 거의 비슷한 꿈을 꾸셨다고했다.
큰집에서 제사를 안지내다 지내다해서 우리가 지냈는데.. 겹쳐 지내서 그런 꿈을 꾼건가 싶기도 해서 신기했다.
꿈에 똥산이 보이고 그 앞에 주인이있어서 사려니까 가격을 계속 올리더니 똥산이 다이아몬드로 바뀌어서 그 주인이 보자기로싸서 도로 가져가는 꿈을 꾸고는
부동산에서 싼임야땅을 소개받고 사려는데 주인이 계속 가격올리다가 개발소식 들리고 안팔았던 적도 있다.
아파트 단지들 들어오고 개발돼서 만원정도였던 땅이 평탄화되고 천만원갔다더라.
꿈과 일치해서 내 돈이 아니었나보다 했다.
꿈이 아니었다면 한동안 꽤 속상했겠지? ㅎㅎ
하루는 자는데 뭐가 엄청 시끄러웠다.
내가 뭐라는지 모르겠네 속으로 말하니까
누군가가 다 조용시키더니 내 귀에 주소를 불러줬다.
처음 듣는 주소였는데 일어나자마자 폰으로 검색하니 무슨면 무슨리 몇번지까지 일치하더라.
꿈에서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보물상자를 주길래 왜 형님한테 안주고 내게 주시냐니까 그 놈은 지킬놈이 아니라고 우리집안에서는 너 말고는 없다고하시며 숫자를 불러주는데 얼마 뒤 부동산에서 땅을 소개해줬다. 끝자리 번지가 그 숫자랑 거의 일치했고 개발됐다.
그날 밤새 이런 저런 우연들이 많았던걸 생각해보니 사후세계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논리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해결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신기하게도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하러 가던 어느 아침 화창한날에 예쁜 구름을 봤다.
내가 죽는날도 이런 날씨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하며 미소짓던 그날엔 죽음도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 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후회없는 생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체력과 정신이 한계에 다다랐던 30중후반 어느날.. 죽음도 두렵지 않았고 그냥 이렇게 죽어도 좋을 것 같고 어쩌면 죽어서 그냥 편히 쉬고싶단 생각이 들때쯤..
공항이 찾아왔다.
어려 문제들로 점점 더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햄과 스팸을 잔뜩 넣고 집에서 끓인 부대찌게를 먹고 잠을 자려고 잠자리에 몸을 뉘었다.
갑자기 심장이 심하게뛰고 숨이 안쉬어졌다.
이게 뭐지?
무슨 증상인지 찾으려고 폰을 들었는데 글씨조차 읽히지 않았다. 뭔가에 정신이 지배된양 아무 생각도 아무 인지도 할 수 없이 그냥 커다란 공포에 더 사로잡혀 안절부절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계속 집안을 돌아치다가 밖으로 나갈 생각이 들어서 하염없이 걸어다녔다.
다음날 해가떠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죽을것 같은 극심한 공포가 온 정신을 지배했다.
누가 건들면 바로 폭발할 것 같은 죽음의 코 앞에 서있는 공포 말이다.
당장 밀면 떨어지는 20층 아파트 옥상 외줄 위에 아슬아슬 서있는 기분보다 더 한 공포였다.
365일 쉬는날 거의 없이 매일같이 일해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내 일도 할 수 없었다.
내 애기가 아빠 아빠 불러도 와이프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도 않고 대답조차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냥 안절부절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했다. 화가 치밀기도하고 억울함과 무기력과 공포이 완벽히 지배당한 내 자신의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 상태의 공항이 5시간 지속되면 한 30분, 1시간은 온정신으로 돌아오는데 돌아온 그 순간도 너무 두려웠다.
또 다시 공항이 올랑말랑하는 그 느낌이 너무 두려웠다.
그 상태로 1주일정도 있었던 것 같다.
와이프는 병원에 가보라고...
계속되는 내 행동이 답답하고 무서우니까 화도내고 울기도 했다.
새로 생긴 식당을 보면서.. 내가 원하던 컨셉이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두번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재정신이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흘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시 재정신이 됐을 찰라에 유투브를 찾아보니 공항이 극복가능하고 완치 가능하다더라.
유투브 정신과 의사가 하는 말이 지하철 타면 공황오는 사람도 있고 공황오는 상황이 다들 다른데 그걸 무서워서 피하면 더 심해지니까 두러움에 맞서라고 하더라.
그래서 맞서기로 결심했다. 공황이 올랑 말랑할때 너무 초초하고 불안해 미칠것 같았지만 담담해지고 오게끔 열어두고 와도 난 이겨낼 수 있다 극복할 수 있다고 다잡았다.
와이프에게 2일만 시간좀 달라고 내가 못할것 같으면 바로 병원가서 약탄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두러움과 공포에 압도당해왔다면 이젠 이겨낼꺼라는 생각만 했다. 심호흡 계속 하고 청심환도 하나 사서 먹었다.
그날 밤에 누워서 그 동안 정신병은 약하고 마음 여린 사람만 걸린다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밥먹을 시간 쉴시간 없이 너무 힘들고 지치고 일도 안풀리고 답도안보이고 막막하고 사기꾼들만 도사리고..
너무 지쳐서 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낫겠다 싶기도 했었는데..
그런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만으로..
이런 공포가 찾아오지 않는 다는 것 만으로도..
생각이란걸 할 수 있다는 것 자채만으로도 큰 축복이었구나..
그래도 감사하다. 이런 특별한 경험을 내게 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그래도 내가 숨쉴 수 있어 감사하다.
짜증내고 화내고 소리지르고 내 탓하고 마음이 심하게 휘저을때가 많아도 ㅋㅋㅋ 부모님과 우리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다.
세상에 이런 질병을 앓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가장 기분 좋은 순간 짜릿한 그 느낌을 계속 상기했다.
앞으로 다 잘될꺼라는 믿음과 확신도 계속 상기했다.
감사하고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오랫동안 이런 정신질환를 앓고있는 다른이들이 이런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이 고통이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고.. 나보다 더 심한 이들은 얼마나 더 할까 가늠하기 어렵다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러다보니 머리에 뭔가 뚫리듯 혈액순환이 되는 것 처럼 쭈룩쭈룩쭈룩 ㅋㅋ 이런 소리가 들리고는 공황이후 처음으로 꿀잠일 잤다. 그리고는 공황이 올랑 말랑할때마다 올테만 오라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싸우기를 반복하긴했지만.. 올랑말랑하면서도 하루동일 공황이 오진 않았다.
그렇게 공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뒤 몇개월 후 술자리를 갖었다. 친구가 술을 안마셔서 의야해 물으니 공황약을 복용중이라고 했다. 그 친구가 겪은 공황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하다보니 다시 스믈 스믈 공황이 올랑 말랑하는게 느껴졌다. 다시 심호흡 명상 감사하고 미래확신(?)같은걸 하니까 괜찮더라.
그 뒤로는 지금까지 공황이 한번도 안왔다.
근데 햄버거나 소시지같은걸 한번에 많이(햄버거4개쯤?) 먹은날은 아주 가끔 공황올것같거나 그런것까지는 아닌데 기분이 좀 침울해진다랄까 그런게 있능거 보니 음식탓도 있는듯싶다.
그래도 지금까지 괜찮은거 보면 잘 극복된듯?
설탕이나 초콜릿 인스턴트 많이먹었는데 당 거의 안먹고 올리브유나 라드유먹고 대체당도 알룰로스만 알룰로스도 거의 안먹으니까 건강은 확실히 좋아졌다.
장 건강이 기분을 좌우한다는 연구도 있더라.
장에 유익균이 많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유해균이 많으면 우울해진다고 한다. 설탕 나쁜기름(식용유, 대부분의 식물성 기름, 튀김 등등)은 장내 좋은균은 죽이고 나쁜균을 남긴다고 한다.
그리고 공황오면 바로 병원가야하능게 맞다고 하더라.
난 그냥 운 좋은 케이스인듯하다.
암튼 공황 그 일 이후로 다시 죽음이 두렵기 시작했다.
오래 살고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딸래미 아들래미 얼굴보면 너무 좋아서 오래 오래 같이 있고싶기도 하고..
그런거 보면 죽음의 공포가 동물의 생존 본능이라 극복하기가 어렵나보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니 좋게 생각하련다.
걱정하던 안하던 정해진거
하루 하루 두렵단 생각이 가끔 스칠때마다 거기에 집중하기보다는 행복하기로 결정하면 그만이다.
꿈, 환영, 귀신, 예지몽... 그런건 요즘엔 무의식의 작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뒤집힌 카드로 도박할때 지금 선택이 잘못됐음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식은땀이 난다는 실험(?) (나이가 들어서 그른지 잘 생각은 안나지만..)
뇌파실험에서 선택을 도민하다가 선택했다고 생각되는 순간 버튼을 누르는 실험에서도.. 선택하기 얼마전에 뇌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라던지..
그런 무의식...
어디에 둬도 방향을 인지하는 사람도 있듯.. 무의식은 우리가 과부하걸리지 않는 한도에서 인지하는 한계를 아마득히 넘고있어서.. 모든걸 알고있는데.. 의식이 그걸 캐치하냐 아니냐의 차이 아닐까..
극도로 감각이 예민해져서 무의식중에 날아오는 공을 잡는다던지하는..
와이파이 연결하듯 어쩌면 뇌는 산개되어있는 정보들을 수신하고 보내는 장치이고 우리의 의식들은 모두 얽기 설기 연결되어있단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극소수지만..
정확하게 점을 보는것도
예지몽도 가능했던게 아닐까
물속에 환영이 가르치던 방향도
절벽 직전에 검은봉투처럼 보이던 얼굴 환영도..
모두.. 무의식중에 인지된 정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형태로 투영된건 아닐까?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존재는 반대가 있어서 성립한다.
짧다는 기준은 길다는 기준이 있어서 성립 가능하다.
어둠만 있다면 그 색이 디폴트여서 어둠이 어둠다는걸 인지하지 못한다. 빛 있어야 비로서 어둠라는 의미를 갖는다. 빛이 있으라는 말은 어둠도 있으라는 말과 같다.
삶과 죽음도 너무 필연적이다.
무가 없다면 존재는 있을 수 없고
존재만 있을 수 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