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장몸부림[수정] 02-11 01:32 02-11 01:16
내 군생활은.. 좀.. 빡쌨다.
물통에 물이 남아있는지,
선임이 슬리퍼를 정리하지 않고 침상에 올라갔는지,
생활관 문이 닫혀있는지 열려있는지..
이런 것들을
침상 끝에 정면만 바라보고 각잡고 미동없이 앉아 귀로만 파악해야했다.
물이 부족하면 바로 달려가서 채워야했고
걷거나 느리거나 잘못 듣고 일어서거나
미쳐 몰랐어도 하루종일 갈굼이었다.
구보(달리기)중이 숨이 가빠졌다고 갈구고
목소리가 크다고 갈구고 목소리가 작다고 갈군다.
걸래를 빨아 널때 짜서 물방울이 나오면 갈구고 물방울이 안나오면 갈군다.
겨울에 우유가 차갑다고 갈군다.
PX 심부름을 시키고 짬도 안되는게 PX를 다녀왔다고 갈군다.
청소를 시키는데로 하면 청소 시키지 않은곳에 흰장갑을 넣고 닦아서 먼지가 나왔다고 갈궜다. 여기는 왜 안닦냐고 안시키면 안하냐고 갈군다.
다음 청소시간에 그 곳을 닦으면 왜 시키지 않은 일을 했냐고 갈궜다. 그렇게 청소하라고 가르쳤냐고 갈군다.
청소검사때 여기는 왜 안닦냐고 하셔서 했다면 이유를 대지마라고 갈궜다.
이유를 안대면 왜 그랬냐고 대답하라고 갈궜다.
죄송하다면 사과하지 마라고 갈군다.
왜그런지 이유를 말하라고 갈군다. 사람말 못알아듣냐고 이유를 말하래서 말하면 이유다냐고 또 갈군다.
죄송하다하면 죄송하면 다냐고 뭐때문인지 말하라고 갈군다. 말하면 이유대지 마라고 했잖아 하면서 갈군다. 안미안하냐고 갈군다. 죄송하다고하면 왜 그랬냐고 또 갈군다. 대답이 없으면 대답이 없다고 니들 집에서는 자식교육을 그따위로 시키냐고 갈군다.
그렇게 밤새 도돌이표.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갈군다.
밖에 나가면 진짜 죽일까 여기서 그냥 죽일까 싶을만큼 갈군다.
이유없는 이유를 만들어서 선임들은 돌아가며 밤새 잠도 안재우고 갈궜다. 이불안에 후레쉬를 눈알에 바로 비추며 계속 갈궜다.
군대에 오기전에는 몰랐다. 왜 총기 난사가 일어나는지.
머리를 몇시간씩 손가락으로 밀면서 부모 욕과 패드립이 난무해질때면 총기 난사가 왜 일어났는지 잘 알것 같다. 내 마음이 그 경계에 가 서 있던 적이 많았다.
여자친구와 부모님을 생각하며 참았다. 여자친구에게 못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부모님께 못난 아들이 되기 싫어서 참았다. 만약 내게 나를 지탱해줄 무언가가 없었더라면 정말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분대와 같이 작업을 하면 A급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어릴때부터 노가다 비슷한 일들을 많이해서 일머리는 좋았던것 같다.
그러면 또 갈군다. 다른 분대로 팔려갈짓하지마라고.
동기와 말을 섞어도 갈군다.
다른 분대 선임이 말걸어서 이야기하고 선임들과 사이좋게 지내도 갈군다. \\\\\\\"네. 아닙니다.\\\\\\\" 이 두 마디 외에는 아무말도 못하게했다. 그 외의 말을 하면 갈군다.
다른 분대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마라고 했다.
다른 분대 선임들이 말걸면 무조건 네. 아닙니다.만 해야했다. 왜 인지 물어도 아닙니다라고 답해야했다. ㅋㅋ
다른 분대 선임들이 이러다 애 죽는다면서 우리 분대 선임들에게 뭐라고 한적도 꽤 있었다.
우리 막내가 얘 반만 따라가도 갈굴일이 없겠다고 왜 그러냐고 뭐라하기도 했다.
그러면 우쭐대지 마라고 다른 분대원들 있을때 일 잘하는척 하지마라고 갈궜다.
사격 만발로 저격수(?)선발로 가게됐을때도 다른 대대 팔려간다면서 안간다고 하라고 못가게 갈궜다.
무릎이 나가서 절뚝거릴때도 의료진 보면 입원하거나 조기전역할지 모르니 못받게 갈궜다.
중대장도 내 표정이 너무 안좋다고 선임들을 중재했다.
중대장 있을때는 무조건 걷고 중대장 없으면 무조건 뛰어야했다. 중대장 있는데 모르고 뛰면 갈궜고 중대장 없는데 걸으면 갈궜다.
이러다 나도 진짜 내가 무슨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갔다. 거울을 볼 시간도 없지만 손씻을때 가끔 거울을 마주하면 다 죽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억지로라도 웃었다.
날 심하게 갈구던 선임이 분대장을 달았다. 그 선임이 전역하기 전에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
위에서 그냥 계속 갈구라고 했다고 한다.
나에게 갈굴게 없다고하면 선임들이 갈구면서 갈굴게 없으면 니가 갈굼당할래? 없으면 아무 이유나 만들어서 갈구라고 했단다. 군기 빠지면 안된다고.
내가 처음에 갈굼당해도 별 타격이 없어보여서인지 점점 심하게 갈궜던것 같다. 갈궈도 마음이 편해보였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갈리게 갈궜다.
나를 갈구던 그 선임도 휴가때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그 선임은 군대와서 말도 더듬거리게됐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뭔가 안절부절했다.
별별 놈들이 많았다.
심심하다고 후임들을 일열로 세워 놓고 삽을 던지거나 삽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황소 개구리 절단기로 자를때 개구리가 까아아악 내는 소리를 듣고싶어 매번 개구리 잡아오라는 싸이코도 있었다. 휘발유 부어 불붙여서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그걸 즐겼다.
윗통 벗으라하고 꼭지를 빨고 다니던 놈도 있었고..
매번 팔베게해달라하고 재워달라는 놈도 있었다.
음치인데 가수지망생이라며 고막 아프게 귀에 바짝대고 소리지르면서 좋냐고 얼마나 좋은데? 가수하면 되겠냐고 매번 묻던 놈도 있었다.
우리분대로 돌아와서..
우리분대에 말 더듬게된 선임 말로는 우리 분대 선임들이 전역전에 다른 분대에서는 절대 안받으려고 했던 조금 어리숙한 신병들이나 관심 병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 조건으로 휴가를 받았다고한다.
내 바로 윗 고참이 특히 심했다.
뭔가 많이 특이했고 말도 어눌했다.
그래서 분대에 제대로 일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
나를 계속 갈궈서 두몫 세몫 빨리하길 바랬다.
그래야 본인들이 편하니까.
매번 초시계 재면서 재촉해서 일을 빨리 끝내게 했다.
선임들 군화 옷 침낭 장비들.. 생활관의 모든 일들과 작업때 거의 모든 일들을 다 나와 어리숙한 선임 그리고 그 위에 말더듬는 선임 셋이 해야했다.
윗선임들의 생각은 짬먹고 내가 삽을 잡아야겠냐였다.
전화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우리 분대에서는 다른 분대들 보다 더 가혹하게 공중 전화 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1달만이었던가? 여친에게 전화를 했다.
난 군생활이 옛날과 달리 편하고 선임들도 다 잘해준다고 여자친구를 안심시켰다.
여자친구는 편하다면서 왜 연락이 이렇게 없냐고 물었다. 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여자친구는 내 연락 기다리는게 너무 외롭고 힘들다며 헤어지자고 했다.
그래.. 외롭고 힘들면 안되지..라고 생각했다.
전역하고 다시 돌아가면 내게 돌아올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친과 헤어진걸 보고하지 않았다고 갈굼당했다.
여친과 헤어져도 안봐준다고 매일같이 갈궜다.
그러다 그 힘든 시간도 지났다. 상병이 됐다.
내 바로 위에 분대장이 있었지만 그 선임은 항상 내게 니가 시키는데로 하겠다며 나를 믿어줬다.
내가 당한게 있어서인지 난 상병을 달고도 누굴 갈군적이 없다. 갈구면 한두번에 설명될것도 좋게말하면 100번만에 알아듣는 건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비효율적인 방식을.. 그 동안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로 무조건 이렇게하라는게 싫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본 결과 이게 제일 효율적인데 니가 더 나은 효율을 찾아보라고 가르쳤다.
내 후임들에게 일과 이후 모든 휴식을 보장했고 나부터 내 아래 모든 인원은 일과에서 다 같이 일을 하게했다.
자기 전투화 빨래는 본인이 하게 했다.
거의 매번 작업은 우리 분대가 먼저 끝냈다. 먼저 작업을 끝낸 분대는 먼저 생활관 복귀였지만 우리분대는 끝까지 남아서 다른 분대 작업을 모두 돕고 마지막에 복귀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분대 분대장들도 나를 좋아했고 나는 대대에서 실세(?)가 됐다.
대대총책도 다음 총책으로 나를 지목했다.
매달 병사들 인기투표에서 1번 빼고 계속 1등 했다.
다른 분대 후임들 표정이 안좋으면 내가 데려가서 px도 사주고 장난도 많이쳐줬다. 웃고 긴장좀 풀라고.. 억지로라도 좀 웃어보게 해주고싶었다.
그러다가 우리 대대 전역후 하사달고 돌아온 선임이 나를 불렀다. 니 분대애들 안갈구냐고 다른 분대 후임들은 매일 갈구는데 니 분대만 꿀빨아서 너 때문에 다른 분대 후임들 불만쌓인다고 상병쳐달고 맞고싶냐고 갈궜다.
난 그 선임에게 내 후임들이 실수한게 있냐고 물었다. 우리 분대 후임들이 작업간에 거의 매번 가장 먼저 일 끝내고 마지막 남은 분대일 끝까지 돕고 복귀한다. 우리 분대 후임들이 사격을 못하냐 체력이 안되냐 내 후임이 실수하면 그땐 내가 책임진다고했다.
그 선임이 자기 분대였던 곳으로 가서 분대장을 불러 갈구는 소리가 퍼져나왔다. X분대 누구 후임들은 사격이면 사격 작업이면 작업 다 잘한다고 내가 갈구려고해도 말문이 막히더라면서 그 분대를 갈구는 소리가 퍼져나왔다.
탄약고 근무가 있던 날이다.
이병때 여자친구와 헤어지고나서부터 계속..
탄약고 근무를 설때면 여자친구와의 추억을 생각했다.
내가 잘 했던 건 생각이 잘 안났다.
내가 못해준 것들만 계속 생각 났다.
그런 것들만 자꾸 생각이 나서 항상 후회되고 미안했다.
상병을 달고서도.. 그날도 내가 그녀에게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때 더 잘해줬더라면.. 하는 후회가 되었다.
새벽 탄약고 근무를 마치고 컵라면에 뜨신물을 부었다. 싸재(PC사용 할 수 있는)방에 들어가서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방명록이었는지 쪽지였는지가 왔다.
여자친구였다.
누굴 만나도 두번 다시 나 같이 좋은 사람은 못 만날 것 같다는 장문의 편지였다.
컵라면을 먹을 수 없어 화장실에 버리고는 조용히 생활관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눕자마자 두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이 너무 나와서 내가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를정도로 앞이 깜깜했다.
갈굼당할때도 너무 힘들때도 운적이 없었는데..
군대에서 처음 숨죽여 울었다.
분대장을 달았다.
다른 분대장들을 모았다.
분대장 선임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병때 기억나냐 너무 힘들지 않았냐..
난 후임들은 그런 경험 좀 안했으면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주말에 대대 후임들을 모두 모아서 익명으로 불만사항과 개선안을 받았다.
개구리 올챙이적 모른다고.. ㅋㅋ
왕노릇에 익숙해 있던 짬에 쩌든 녀석들에게 너무 큰 변화를 수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나보다.
조율해서 어느정도 개선은 했다. 그로인한 부작용도 많았다.
내 분대장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내가 원하던 병영 문화를 만들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그땐 많이 남았지만.. 뭐 어찌됐던 작은 파도가 일다보면 언젠가는 닿게됐을 일이었던 것 같다.
장단은 있지만 말이다.
분대장 달고 인원파악이나 그런것들 실수 한번 없이 하고
행정병에서 보고서와 파워포인트 배워서 다 고쳐놓고.. 손님이 자주오면 탕비병에게 커피대신 녹차로 바꾸라해서 가져가고..
암튼 그래서 그런지 당직 사관할때 섭외 1순위가 됐다.
군대에 있던 누가 그랬다. 군대는 거지부터 왕까지 모든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내가 가장 갈굼을 많이 당했던 곳도 가장 칭찬을 많이 받았던 곳도 군대였다.
돌았냐 미쳤냐 가정교육 그따위로 받고 쳐 살았냐
너같은 xxxx는 처음 본다..
니 딴 애기를 낳고
아무튼 기억도 안나는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말들 욕들..
X대대는 간부도 안보내서 개판칠줄 알았는데 왜 너희 대대에서 간부없이 너를 보낸지 알겠다.
넌 나중에 뭐라도 될것 같다며 내 이메일을 물어보던 타대대 중대장님..
니가 분대장달면 진짜 멋질것 같다. 너 분대장 다는걸 못보고 간다며 아쉽다던 중대장님.
본인의 군생활동안 만난 병사중에 니가 최고였다던 주임원사님..
내가 만나봐온 군인 중에 니가 제일 군인같다.
넌 뭘해도 성공할 것 같다..
지금까지도 평생 들어보지 못한 그런 칭찬들을 수 없이 들었던 곳도 군대였다.
전역 신고 대신 차한잔 하자던 대대장님..
그리고 유종의 미를 거두자며 유격훈련 같이 가자던 딸을 소개해준다던 주임원사님을 뒤로 한채.. ㅋㅋ
올라탄 기차안..
그렇게 갈망하고 그립고 그립던 일상..
밖같 공기.. 창밖 풍경..
군대 밖에서 받는 햇살 마저 너무 감미롭고 짜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