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시 님 말이 맞음

461575No.401122022.04.26 15:41

트롤링과 어그로 목적으로 댓글 다는 사람에게 대응하기엔 더없이 좋은 방법이란 점엔 동의하지만, 개인 호불호 표출 후 님말맞 시전하거나 논리적 전개가 필요한 주장이면서 반박 가능성이 높은 주장을 펴면서 '반박시 님 말이 맞음'하고 끝맺는건 용례와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드네요.

어떤 말이나 주장을 할 땐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글을 올린다는건 누군가가 이 글에 반박하고 싶거든 누구라도 의견 제시를 해주셨음 하는 바람이 있는 셈이고, 반박이 일리 있다면 그걸 수용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빈틈없는 논리가 수반되어야 함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단순한 의견 제시에 꼭 하나하나 근거와 논리를 따져야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TV 프로에서 남녀특징을 희화화해 갈등 조장을 하지 말았음 좋겠다'라던 가벼운 주장들은 수많은 개그프로에서 남녀 희화화 농담을 종식시켰습니다. 단순 의견들도 모이면 힘이 되기 때문에, 무분별한 의견 제시를 예방하고자 '의견 제시는 논리 전개의 책임을 가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생각은 이래 근데 내 주관적 사견일뿐 객관적인건 아니니 니 의견도 존중함"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중립 기어를 씨게 박겠다는 의지라면 이 표현을 써도 이해하겠으나,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문장 뒷편에 선제적으로 '반박시님말맞'을 써둘 필요가 없다고 느낄 겁니다. 반박이 들어오고 나서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라고 대응하는 것과, 선제적으로 '반박시 님 말이 맞습니다'라고 대응하는건 천지차이입니다. 마치 고백 받은 적도 없는데 먼저 고백거절을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논쟁 자체를 거부하고 피할 생각이라면 그냥 일기장에만 적고 커뮤니티에선 뜻을 비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싸우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을 '반박시님말맞'으로 표현하는건 방법이 많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비유하자면,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을 쳐다보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다니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간혹 곁눈질이나 혹은 째려보듯 올려다보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다수는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겠지만, 누군가에겐 전쟁의 의미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 눈빛으로 촉발된 전쟁에 당신은 "싸우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할 것이고, 그제서야 상대는 의도를 이해한 후 화를 누그러뜨릴 것입니다. 한편, 티셔츠에 '제 눈빛은 원래 이렇습니다.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써놓고 사람들을 대놓고 째려보며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반박시님말맞'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주장이던간에 그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는 거의 항상 존재합니다. 서로의 입장이 '단순히 관점이 다른 경우'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대립하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반박시님말맞'은 후자에 대해 모순점을 일으킴과 동시에 반박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해 '결국 내 말이 맞다'는 것만 상대(혹은 다수)에게 전달하는 셈이 됩니다. 굉장히 이기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죠.

"난 짜장면이 좋아, 하지만 네가 짬뽕을 좋아한다고? 너는 짜장면이 싫다고? 그것도 그럴 수 있지"처럼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정치 사회 세션의 이슈들이 취향을 넘어 정의와 도덕에 관한 깊은 통찰을 요구합니다. 최근 검수완박 이슈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다만 오해하지 마셔야 할 점은, 제가 이 자리에서 이 사안에 대한 토론을 하자거나 제 의견이 어떻다라고 말하려는게 아닙니다. 이런 이슈에서 무언가를 주장하려면, 단순 취향을 넘어서 근거와 논리를 통해 정의와 도덕 혹은 장기적인 이득 등등 주장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가치관에 입각한 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난 그냥 검수완박 찬성/반대야'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이유로 찬성/반대야'라고 주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력하다고 주장하는 찬성측의 입장도, 검찰의 고유 권한이며 경찰이나 공수처로 이첩되어도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방향은 맞을지언정 너무 급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주장도 모두 나름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어떤 주장이 얼마나 힘을 얻느냐에 따라 사회적 이해관계의 판도가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슈에서 어떤 패널의 입장을 지지하던간에 깊은 통찰이 필요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반박시님말맞'은 토론의 기회를 차단할 뿐입니다.

진지하게 이 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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