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글 읽고

112329No.408662022.06.09 00:42

밑에 성추행 글을 읽고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제 얘기를 털어놓으려고 해요. 저는 11살부터 몇 년간 지속적으로 사촌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어요. 처음 시작은 집에 친척들이 놀러왔을 때였어요. 같이 놀다가 제 방에서 잠들게 됐는데, 저에게 엄마아빠 놀이를 하자며 유사 성행위를 했어요. 삽입도 시도했는데 어려서 그랬는지 실패했고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절 달래가며 친절하게 제 행동을 유도했고, 전 그대로 따랐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하면 안되는 행동이란걸 알았고, 무서웠고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강제로 윽박지르며 하는게 아니었는데도요.
누가 알까봐 무서웠고,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 전까지 잘 따르던 사촌오빠라 거절하기가 힘들었어요. 진짜 별거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거 같아요.
처음 성추행이 시작된 이후로 친척들끼리 모일 때마다 오빠는 제가 혼자 있을 때를 노려서 계속 비슷한 행동들을 했고, 심부름을 핑계로 절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인적이 드문 벤치에서 하기도 했어요. 오빠를 피하다 방에 들어가서 잠들면 잠든 제 뒤에 와서 그러기도 하고요. 전 그때마다 자는 척, 모르는 척 했어요.
집안 사정으로 한참을 못 만나다 중3?고1?쯤 만나게 됐는데 저한테 묻더라고요. 예전일이 생각이 나냐고. 저는 끝까지 모르는 척 했어요. 그 땐 어려서 그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라 다 까먹어버린 것처럼요. 그 후로 성추행은 멈췄어요.
저는 지금까지 한 마디도 나한테 왜 그랬냐고 오빠한테 따져묻지 못했어요. 그 때 그 일들은 없던 일이 됐어요. 아마 오빠는 제가 진짜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성추행을 당할 때조차 한 번도 하지 말라고 하지 못했어요.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자주 보진 못하지만 가끔 보게 되면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빠를 대해요. 그 앞에서 웃기도 하고 대화도 해요. 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어요.
저도 제 행동들을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피해자가 저럴 수 있지? 어떻게 친근하게 가해자를 대할 수 있지? 어떻게 한 번도 반항하지 않을 수 있지?라고 생각할거 같아요.
그런데 정말 그 상황이 오면 진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냥 피하고 싶고, 아무런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싶고, 그냥 진짜 그랬음 좋겠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거 같아요. 물론 성인과 미성년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요 정말.
가해자를 대면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오히려 그래서 반항할수가 없어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제 나한테 안 그러길, 실수였길 빌면서 그냥 가만히요.
종종 성추행 피해자의 기사에서 피해자가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둘 사이에 뭐가 있었을거다, 거짓 미투다, 좋아서 해놓고 왜저러냐 식의 반응들을 봐요.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저조차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제가 겪어보니 그냥 그렇게 돼요 정말.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하고, 당당하게 피해 사실을 밝히고 사과를 요구하고 화를 내는건 정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무섭고 두려운, 피하고 싶은 상황과 상대를 직면하는 일이에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피해자의 어떤 선택이든 존중 받고, 모든 화살은 가해자에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밑의 글쓴이님도 아마 저와 비슷한 심리상태셨을 거예요. 겪어보지 않은 분들의 이해가 어려워보여 안타까워서 글 써봤어요.
여기에라도 털어놓으니 좀 속 시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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