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21세기 현우

995657No.522612025.04.14 10:39

정우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고개를 들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현우야, 심리학이 인간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서 단순화한다고 했지. 맞아, 그 부분엔 문제가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생각해봐. 진짜 인간을 통제하려는 게 과연 심리학일까? 아니면 과학기술이었을까?”

현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난 인간 이해를 가장한 조작이 문제라고 했지.”

정우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아니, 넌 지금 심리학이 인간을 수치화한다고 비판했지만, 인간을 '부품'으로 본 건 과학기술 쪽이야.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생산성 단위', '효율', '노동력'이라는 수치로 평가되기 시작했어. 대기 오염, 기후 변화, 생태계 파괴, 그게 다 누구의 산물이야?”

현우는 말을 멈췄다. 정우는 멈추지 않았다.

“심리학, 철학, 문학은 인간의 복잡함을 이해하려 했고, 때론 그 복잡성 속에서 윤리와 감정, 의미를 찾으려 한 학문이야. 하지만 너처럼 '측정 가능한 것만 진짜'라고 외치는 태도는, 인간을 결국 '계산 가능한 소비자'나 '데이터 더미'로 환원시키는 거야. 그게 진짜 통제지.”

정우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위기는 심리학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이과적 탐욕이 윤리적 사유 없이 폭주한 결과야. 기후 변화, 핵무기, 인공지능, 생물 무기… 이건 다 '할 수 있으니 한다'는 이과적 오만이 만들어낸 파국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문과 학문을 무의미하다고 몰아붙여? 오히려 부족했던 건 인간에 대한 철학, 반성, 그리고 사유였어.”

현우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정우는 조용히 덧붙였다.

“네가 말한 ‘대부분의 인간을 위한 이론’이라는 말. 그건 오히려 기술이 더 자주 쓰는 방식이야. '대부분의 환경에서 작동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소수의 인간을 배제한 게 바로 이과적 시스템이야. 진짜 인간의 다양성과 감정을 무시한 건 오히려 너희가 찬양하는 쪽이라고.”

정우는 마지막으로 말하며 입을 닫았다.

“심리학이 인간을 조종하는 도구가 됐다고 했지. 그런데 지금 사람들을 스마트폰에 묶어놓고, 광고 알고리즘으로 조종하는 건 누구야? 심리학이야, 아니면 과학기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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