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제 오늘 있었던 일 푸념

980517No.262332020.05.05 01:47

어제 혼자 게임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내 게임 실력을 추켜세워주며 같이 하자는 메시지였다. 내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난 흔쾌히 수락했고, 그날따라 뭔가 잘 풀렸는지 한 판마다 게임을 이끌어나가며 시원한 장면을 연출했다. 유머 코드도 뭔가 서로 맞았는지 평소보다 더 재밌게 놀았던 것 같다.

오늘, 또 혼자 게임하다 메시지가 왔다.
내가 '진짜' 여자가 맞냐는 질문이었다.
*난 한 판만 함께할 사람이 아닌, 지속적으로 같이 게임을 즐길 것 같은 사람에게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미리말해 둔다.옛날에 겪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내 목소리는 대부분의 여성보다 낮고, 대부분의 남성보다 높은, 변성기 안 온 남자 목소리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걸 굳이 말하는 이유는 미연의 섹드립 방지다. 같이 드립치며 게임하던 사람이 내가 여자라는 걸 석 달만에 알았을 때의 상황이 매우 좋지 못했기에..)

난 넷카마가 아니엇기 때문에 파운데이션 21호 쓰는 천상여자라고 대답했다.(사실 사놓고 쓰지도 않는 화장품이지만 따로 인증할 수단이 없었다)
그랬더니 여자가 왜 화장품에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냐는 질문을 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라이터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 못 봤는데!
내가 화장 잘 안하는 학생이라 모른다고 하니, 여학생이 화장을 안하냐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
난 넷카마가 아니라 진짜 여자였다. 억울하다
이렇게 넷카마 취급을 받을 수는 없었기에, 필살기로 아홉 살 때 산 핑크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공주님이 그려져 있는 침대보를 인증했다.
겨우 난 내가 넷카마가 아니란 걸 증명하는 데는 성공했다..그리고

"헐 여잔데 왤케 게임 잘하세여-_-
그래도 방이 여자여자하니 여자 인정해드림"

사실 '여자인데 게임 잘한다'는 말은 게임 잘 하는 사람이 여자라는 걸 밝히면 한 번 쯤 듣는 소리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이렇게 게임 잘하는 여성분 처음 봤어요' '와 여자 맞아요? 진짜 잘하시네요' 같은 칭찬처럼 말하는 말은 꽤 많이 듣는다.

난 근데 이걸 같은 여자 입으로 들을 줄은 몰랐지..
단순한 두 문장이지만, 난 나 자신을 부정당하는 감정을 떨칠 수 없었다. 여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목소리, 또래처럼 화장을 좋아하지도 않고, 총쏘고 죽이는 게임 잘함.

사실 이것만 보면 나도 날 의심할 것 같긴 하다.
내가 정말 허무했던 점은 내가 넷카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내 침대에 그려진 분홍 드레스를 입은 공주 그림 하나밖에 없다는 거였다
좋아요 0 0
이전12261227122812291230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