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바삭한 가을도, 폭신한 봄도 아니었다.
그래, 그 일이 벌어졌던 때는 흐리고 차가웠던 어느 겨울 날이었다.
나는 언제나와 다름없이 집 앞 골목 구석진 자리로 들어가, 잘 안 켜자는 라이터를 칙칙 거리며 주머니에서 살짝 구겨져버린 양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으, 추워"

옷을 너무 얇게 입은 것 같다. 보통 눈이 오면 조금쯤이나마 포근하던데, 오늘은 아니었다. 저녁이어서 더 그런가. 칼바람이 외투사이로 져며들어와 속에 있는 잠옷까지 뚫고 맨살에 닿는 느낌이다.
붕 뜬 머리카락 사이로도 들어와 두피도 따끔거리는 것 같아, 피던 담배를 입에 물고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려 하던 때였다.
그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아니, 벌어졌다고 해야한다.

(다음 타자..)

내앞에서 홀연히 담배를 피던 그 눈사람.. 아무리봐도 머리에 피도 안마른 그 어린 눈사람녀석.. 순간 정적이 흐르고 그녀석을 자세히 쳐다본다.. 역시나 내 눈을 피해 앞만 주시하는 그녀석.. 내 신경은 이미 오른손에 집중되고 반사적으로 그녀석의 뒤통수를 날린다..
"이 어린놈의 쉐퀴가!"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