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주의. 제 스스로의 미숙함 때문에 창피하네요.

870863No.142282018.09.29 15:19

평소 친하게 지내는 단톡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허튼 마음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친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셀카를 보내 어떠냐고 물어도 보고. 오빠는 내꺼야 오빠만을 바라본다하며 하트하트 하며 (공공연하게 단톡에서도) 괜시리 흐뭇해지는 표현도 해주고..전화해달라고 하고...기다렸다고 하고.. 고민 상담도 하고 다른 사람 연애 이야기도 하고.. 자취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초대를 하고 싶다는 등.. 그간 목소리를 못들었더니 심심했다는 등.. 제 기준으로는 충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둘이 뭐야? 하며 괜시리 놀릴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허튼 마음'을 품을 정도로요.

하지만 머리로는 짐작했습니다. 이 친구가 정말로 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며. 정말로 친한 오빠동생이기 때문에 뱉는 말이고. 뭣보다도 직접 대면한 적이 없고 그게 아니라는 뉘앙스를 순간적이지만 느끼기도 했구요.

그리고 그런 상황 자주 있지 않나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목소리, 이름, 얼굴 정도만 알고 (혹은 모르거나) 적당히 친하다는 이유로 괜히 호감 품고 카톡고백했다가 관계 애매해지는 경우 말이죠. 그런 상황을 직접 보기도 했고 당사자들에게 상담을 해준 적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그런 이유로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지만 너무 조급하고 진정성이 없다'라는 식으로 조언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난 함부로 저러지 않겠다 다짐도 했구요.

...그런 제가 그 동생에게 똑같이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번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고 자중했습니다만 나중에 이 동생과 만나게 될 때. 그땐 진지하게 생각해볼 의향이 있었고 그 전엔 이미 더 잘되고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조급하게 말이죠.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그 동생은 얼마전 남자친구가 생겼고 몸이 베베 꼬이면서 스스로에 대해 한심함과 창피함이 밀려오더라구요.

찌질한 생각도 들었어요. 도대체 친함의 표현은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 걸까. 왜 그런 얘기들을 해왔던 걸까. 이제 예전만큼 연락 못하고 지내겠구나. "내가 조언해줬던 그 사람들이나 나나 별반 차이가 없구나" 등등... 이런 걸로 고민하고 칼같이 대하지 못하는 게 짜증나고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서 감정이 솟아오르는게 싫고...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이라도 설레는 말을 해도 쉽게 호감을 품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보였고... 왜 나는 이렇게 쿨하지 못할까 싶고... 그나마 다행인건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인데. 이게 왜 위로가 안되고 아쉬워하는건지 이해가 안가고...이성이랑 감정이 너무 다르지 않냐 하면서 자책도 하고...그랬네요... 남자는 이렇게 성급한 생물인가봐요.


....쓸데없는 긴 이야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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